四柱命理哲學    [재미있는점복이야기] - 백제의 점복술 2008/01/24

신라,고구려와 거의 같은 시애에 서로 국경을 접하고 있던 백제의 점복습속도 역시 고구려와 별 다를바가 없엇다. 다음은 유명한 두가지 예이다.

-요참을 가지고 공주를 얻고 후에 왕이 되다.

백제 제30대 무왕의 이름은 장,아명은 서동이라고 하였다.
신라 진평왕의 셋째 공주선화가 재색을 겸했다는 이야기를 듣자,경주에 가서 아이들을 만나는데로 참마를 주니 동네아이들은 모두 그를 따르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동요를 만들어 가지고 그것을 아이들로 하여금 노래부르게 하였다.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시집가서 서동이를 밤이면 몰래 안고 간다네"
이 노래는 얼마 안 가 신라 안에 잔뜩 퍼져 드디어 대궐에까지 들어갔다.
시집도 가기 전에 신분도 낮은 서동과 사통(私通)한 공주를 용납할 수 없었던 신하들이 격렬하게 간재하자 진평왕은 그녀를 먼 지방으로 귀양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이때 왕후는 순금 한 말을 노자로 주었다.

귀양길을 떠나는 공주에게 서동이 뛰어나와 절을 하면서 호위를 자청했는데
공주는 이상하게도 서동이 마음에 끌려 이를 허락한다.
드디어 남 몰래 관계를 맺은 후에야 공주는 그가 서동이라는 사실을 알고
노래가 맞았음을 깨닫게 됐다.
백제에 와서 함께 살아갈 길을 논의할 때 공주는 순금을 내놓으며 "이것이면 한평생 부자로 살 수 있다"고 말하는데 이말을 들은 서동은 놀라면서 어릴 때 마를 캐던 데에 이런 것이 많다고 답했다.

크게 놀란 공주가 산더미 같은 금을 부모님 계신 궁전으로 보내자고 하자
이에 동의한 서동은 용화산 사자사의 지명법사에게 금을 보낼 방법을 물었다.
법사가 하룻밤 사이에 귀신의 힘으로 신라 궁전으로 날라 주었는데
이를 신기하게 여긴 진평왕이 더욱 존경하면서 늘 편지를 띄어 안부를 물었고
서동이 이로 인해 인심을 얻어 백제 왕이 될 수 있었다<삼국유사>

이이야기는 신라의 국현인 원효가 요참을 이용하여 공주와 혼인했던 일과 아주 똑같은데 이런 풍습은 당시 보편화 되어있었는지 모른다.
요참과 같은 가요엔 마력이 있다고 믿는신앙이 있었다.


-의자왕
백제말년 의자왕20년 경신6월, 한귀신이 궁중에 들어와서"백제는 망한다,망한다'고 큰소리로 외친다음 땅속으로 파고들어갔다.
왕은 이를 괴이하게 여기어 땅을 파보도록 하니 지하 석자깊이에서 한 마리의 거북이 나왔고 거북의 등에 글이 씌어 있었는데 " 백제는 온달 같고 신라는 초승달 같다"고 쓰여 있었다.
무당에게 물었더니 무당이 말하기를 "온달이란 꽉 찬 것이오니 차면 이지러지는 법이 오며, 초승달이라 함은 아직 차지 않은 것이오니 차지 않으면 점점 차게 되는 것 입니다." 고로 백제는 차츰 망하고 신라는 점점 흥할 조짐이라고 풀었다.
왕은 노해서 무당을 죽였다.
어떤 이가 말했다. "온달은 꽉 찬 것이고. 초승달은 미약한 것이오니 생각건대 우리 나라는 성해지고 신라는 미약해진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왕은 이 풀이를 기뻐했다.
그러나 이 해 당나라와 신라군에게 공격당하여 마침내 사직을 잃고 말았다<삼국유사>

이 이야기에서와 같이 의자왕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풀이를 했던 사람은 죽이고,자기 마음에 드는 풀이를 한 사람의 말을 듣고 만족했다.
그러나 마침내는 만월이 기우는 것처럼 멸망하는 운명앞에서 어찌할 수 없었다.
이와 같이 당시는 점복서조가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며 예시된 운명은 또한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점복에 대한 강고한 확신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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