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柱命理哲學    [재미있는점복이야기] - 고구려의 점복술 2008/01/24

고구려에는 무녀가 점복자로써 중용되었던 예가 많이 발견된다.
유리왕 19년 가을 8월, 교제에 쓸 돼지가 달아 났다.
왕은 탁리와 사비를 시켜 잡아오게 하였다.
그들은 장옥 늪에 이르러 돼지를 발견하고, 칼로 다리의 힘줄을 잘랐다.
왕이 이를 듣고 노하여 말했다. "하늘에 제사지낼 희생에 어찌 상처를 낼 수 있는가?" 왕은 두 사람을 구덩이 속에 던져 죽이는 생매장에 쳐해졌다.

그후 한달쯤 되었을때 왕이 병들었다.
이일을 무녀에게 점치도록 했던바 탁리와 사비가 왕을 저주하는 것이라고 풀이하였다.왕은 두 명의 혼을 정중히 제사지내고 그 죄를 사하여 주었는데 얼마 안되서 왕의 질병은 깨끗이 나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현재도 무녀들에 의해 행해지는 병점이라로 볼 수 잇는데 당시무녀가 점복자로서 중시되었음을 알수 있다.

-운명점
산상왕 7 년 , 왕은 후사가 없으므로 하늘의 옥황상제에게 아들을 점지해주십사는 기도를 하러갔다.
꿈속에 옥황상제가 나타나서 "왕후는 아이를 낳지 못할 것이니 첩의 몸에서 아들을 낳도록 해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당시 왕은 첩을 두고 있지않았기 때문에 체념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후 산상황12년 겨울,왕궁의 돼지가 성 밖으로 도망쳤는데 주통촌이라는 마을에 사는 20세쯤 된 묘령의 미인에게 붙잡혀서 끌려왔다.
왕은 이 여인에게 마음이 끌리었다.그래서 미행을 하여 그녀의 집을 방문했다.그리고 두 사람은 사랑에 빠졌는데 이듬해인 산상왕 13년 봄 3월 , 왕후는 은밀히 병사를 보내어 그녀를 죽이려고 하였다.
여인은 병사에게 "나는 죽어도 상관이 없지만 뱃속에 있는 왕자는 어떻게 되겠는가?"라고 말했다.
당황한 병사들이 일단 돌아가 왕후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 하자 왕후는 더욱 노했다. 이 사실을 안 왕은 그녀가 낳은 아기가 분명 자기아이라는 것을 알게되자,왕후에게 사과하고 용서해줄 것을 청했다.
왕후도 하는 수 없이 이해하기고 했는데,9월이 되자 경사스럽게도 옥동자가 태어났다. 왕은 대단히 기뻐하며 이는 하늘이 주신 아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돼지가 교외로 도망쳤던 일을 우연한 계기가 되었다며 그 이름을 교체라고 짓고 그 어머니를 정식으로 맞아들여 소후로 삼았다.

그러나, 이일이 있기 훨씬 이전, 이 소후의 어머니가 임신하고 아직 아니를 낳기전에 무녀에게 점을쳐본일이 있었다.
무녀는 점을 친다음,"당신은 틀림없이 왕후가 될 아이를 낳게 될 것이오"라고 했으므로 어머니는 기뻐하며 딸에게 후녀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는대 과연 후녀는 왕후가 되었고 왕자를 낳았던 것이다. <삼국사기>

-돼지를 쫒아가 도읍을 점치다.
고구려의 국도는 원래 동명왕 주몽이 삼현신과 의논하여 비류수상류에 세웠다고 한다. 그런데 공왕22년 겨울10월데 이 국도를 국내위나암성으로 천이하였다.
그런데 이 천도가 돼지에 의해 이루어 졌다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즉,동왕 21년 봄 3월 , 제사의 희생물로 바칠 돼지가 도망했는데 담당관원이 이를 쫒아가니 그 돼지는 국내위나암부근 농가에서 기르고 있었다.
주변을 살펴보니 그 곳은 아주 좋은 성지였으므로 관원은 돌아와서 이 사실을 왕에게 상주하였고 왕은 9월에 친히 그곳을 시찰한후 마침내 도읍을 그곳으로 옮겼던 것이다.

이는 신라의조점과 일맥상통한다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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