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柱命理哲學    [재미있는점복이야기] - 신라의 점복술 2008/01/23

신라 제27대 선덕여왕은 세가지 일을 예점한일로 유명한데
그 중 두가지 는 모두 사물을 보고 앞일을 예언하여 적중했던 것이다.
1.당시 당나라 태종이 홍,자,백 등 삼색의 모란을 그린 그림과 함께 씨를 보내왔다.여왕은 그림을 보고 "이꽃에는 향기가 없다"고 하였고 씨를 뿌려 꽃이 핀다음보니 과연 향기가 없었다.

2.어느해 겨울 영묘사쪽의 옥문지에서 수많은 개구리들이 3,4일동안 멈추지 않고 계속 울었다.
이를 이상히 여기고 왕에게 상주하자 여왕은 곧 각간 알천,필탄 등에게 정병 2천을 내주며 "속히 서교의 여근곡을 정찰하시오,그곳에 적병이 숨어 있을 것이니 이를 모두 찾아 죽이시오" 라고 명했다.
각간 두명은 각각 1천 명을 군사를 이끌고 서교 부산기슭에 가보니 과연 여근곡이 있었고 그곳에는 백제의 군사 5백명이 숨어 있었으므로 불의의기습을 가하여 그들을 모두 죽이고 이어서 백제의 장군 및 후속부대 1천2백 명도 어려움 없이 한사람 남기지 않고 전멸시킬 수가 있었다.
후일 군신들이 왕은 어떻게 그런예지를 할수 있었느냐고 묻자 여왕은 대답했다.
"꽃 그림에 나비가 없으므로 향기가 없다는 것을 알았소,또 개구리가  노형이 있으면 그것은 병사의 상이요,옥문은 여근이고 여는 음인데 그 색깔은 백색,백색은 서쪽이오.그러므로 병사가 서쪽에 있다는 것을 알았소, 또 남근이 여근에 들어가면 반드시 죽는 법.이로써 그것들을 잡기 쉬울 것으로 알았소이다"
라고 말했고 이를 들은 군신들은 모두 그 성지에 감복했다한다.<삼국유사>

이 와 같이 신라에서 물상의 변화동정을 관찰하여 일이 발생할것을 점쳤다는 일은 여황 한사람뿐이 아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사와 소원한 여왕까지도 그 정도의 점술에 통달하고 있으니 , 다른 사람은 추찰하여 알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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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38대 원성왕이 아직 왕위에 오르지 않았을때 " 두건을 벗고 백립을 쓴다음 열두 현의 금을 안고 천관사의 우물속에 들어 간" 꿈을 꾸었다.
이를 해몽시켜보았던바 아주 흉몽으로서 직위를 잃고 붙잡혀가서 마침내는 투옥될 조짐이라고 하였다.
왕은 이를 괴로와하여 집안에 틀어박히어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 여삼이라는 대신이 찾아와서 가까스로 만났고 두문분출하는 이유를 묻자 왕은 꿈과 해몽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자 여삼은 " 그꿈은 아주 길몽입니다. 앞으로 대성하신 후에도 저를 잊지 않으시겠다면 해몽을 해드리겠습니다."
라고 말했다.왕은 이를 약속하고 좌우를 물리친다음,해몽을 해달라 부탁했다.
"두건을 벗은 것은 윗사람이 없어졌음이요,백립은 쓴것은 왕관을 받을 조짐이며,열두 현을 잡은 것은 왕의 영화를 12대 자손까지 이어줄 조짐이며 천관정에 들어간 것은 왕궁에 들어갈 징후입니다."라고 하였다.
과연 이 해몽데로 원성은 그 이후 얼마 안되어 왕이 되었던 것이다.<삼국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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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국호인 계림의 유례에서부터 영향이 깊엇는지 신라의 조점(새점)은 문헌곳곳에서 중요성을띤다.
신라를 칭하여 계림이라고도 한다.이것은 백계의 명조에서 유래된 것이며 한국의 점복습속을 찾아봄에 있어서 제일 흥미 있는 일이다.
신라 탈해왕 9년 , 어느날 밤 왕은 금성의 서쪽 시림숲속에서 닭이우는 소리를 듣고 이상히 생각하여 대신을 보내어 조사토록 했던바,한 그루의 나무 밑에 백계가 울고 있었고, 그 나뭇가지에 금으로 된 작은 궤짝이 매달려 있었다.
이 궤짝을 열자 그 속에서 남자 아이가 나왔다.
그래서 왕은 크게 기뻐하고 이는 하늘이 과인에게 후사를 내려주셨다며 소중히 양육하는 한편, 금 궤짝에서 나온 것을 기념하여 성을 김씨,이름을 알지라고 하였으며, 시림을 계림이라고 고치고 그것을 근거로 하여 국호를 계림이라고 했다는 것이다.<삼국유사>


당나라 고중현경5년 소정방이 이끄는 당군은 김유신이 통솔하는 신라군과 연합하여 백제로 쳐들어갔다.
백제에는 장군 계백을 파견하여 백강탄현에서 맞서 싸우게 하였다.
연합군이 파죽지세로 진격하여 백강에 이르러 진을 쳤을때 홀연히 한마리의 새가 당군소정방의 진영위를 돌았다.
재빨리 사람을 시키어 점치게 하였던바 이는 소정방이 전상을 입을 조짐이라고 하였다.
겁이난 소정방은 군사에게 명하여 진격을 중지시켰다.
그러나 신라의 명장 김유신이  타이르매 마침내는 군사를 진격시키어 백제군을 쳐부수었으나 김유신이 신검을 빼어 그 새를 죽이기까지 소정방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를 보더라도 새를보고 점치는 것에 대한 신앙이 얼마나 강했었는지 짐작이 갈것이다.

다음은 새점에 의하여 왕의 시해를 미연에 방지한 "사금갑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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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제21대 소지왕 10년 하루는 왕이 천천정에 나가보니 새와 쥐가 나왔느데 쥐가 말하기를 새의 뒤를 따라가 보라고 하였다.그래서 왕은 기사를 시키어 이 새를 추적하였는데 그 기사는 이 새를 놓친 곳에서 한 노인과 만났다.
노인은 한통의 서장을 꺼내서 바쳤다.그 서장의 겉봉에
"이것을 열어보면 두명이 죽고 열어보지 않으면 한명이 죽는다"고 씌여있었다.
왕은 두명이 죽는것보다 한명이 불행해지는 편이 낫다며 열어보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신하가 두사람이란 서민을 가리키는 것이고 한사람이란 왕 자신이라고 풀이했으므로 왕도 그럴것이라며 열어보니 " 금갑을 쏘라"고 씌여 있었다.

그래서 서둘러 왕궁으로 들어가서 금갑을 쏘자 내전의 분수승과 궁주가 몰래
정을 통하고 있었음이  발각되었으며 이 두 사람은 마침내 주살당하고 말았다.
이런 일이 있은후 매년 정월 대보름에 향반을 지어 새에게 먹이로 주게 되었다.
현재 약식(약밥)은 이 향반이 전해져 오는 것이라고 한다.

까치는 현대에도 경사스런 길조로 치는데,신라에서도 역시 길조였다.
신라 제 4대 탈해왕이 발견된 것도,표류해온 배에 까치가 모여들었고,이상하게 생각한 나머지
그 배를 조사해본 데서 유래한다.
한편 상서로운 것이 태어난 경우에는 그것을 배에 실어 흘려보내고 그것이 도착한 곳을
인연이 있는곳으로 보는 물의 흐름에 의해 그것의 운명을 정하는
일종의 표류운명점과 같은 습속이 행해지고 있었다.

다음은 발췌한 신라의 탈해왕 신화이다.

옛날 우리나라의 남쪽에 용성국이란 나라가 있었다.
항상 따뜻하고 살기 좋은 곳이어서 늘 평화스럽게 살아가는 나라였다.
어느 해에 함달파가 왕위에 올랐다. 함달파는 왕위에 올라 더없이 기쁘고 즐거운 나날을 보냈지만 한가지 아쉬운 것은 자기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를 왕자가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왕비는 새벽이면 누구보다도 먼저 일어나 하늘을 향해 비는 것이었다.
"천지신명에게 비나이다. 저에게 왕자를 낳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그것은 저녁에도 마찬가지였다. 왕비는 별을 보며 왕자를 낳게 해달라고 열심히 빌었다. 이렇게 7년 동안을 하루도 쉬지 않고 빌었다.
이처럼 기도한 것이 효험이 있었던지 왕비의 몸에는 태기가 있었다.
함달파 왕은 물론 왕비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백성들도 모두 기뻐하였다.
그러나 그처럼 왕과 백성들이 기다리던 왕자 탄생의 날에는 모두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왕비가 낳은 것은 아름다운 왕자를 낳은 것이 아니라 커다란 알을 낳았기 때문이었다. 시녀들은 깜짝 놀라고 함달파 왕은 크게 노했다.

"아니 뭣이라고? 왕비가 알을 낳았다고? 세상에 이런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이런 일을 처음 당하는 신하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다.
함달파 왕은 눈앞이 캄캄했다. 왕은 한동안 어쩔줄 모르다가 마침내 대신들을 모아놓고 좋은 방법을 의논했다.
"이 나라의 왕위를 이어갈 왕자가 없어서 왕자가 태어나길 기다렸더니 왕비의 몸에서 알이 탄생되었소.
이런 일은 고금에도 없던 일이니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겠소."왕이 근심스럽게 말했다.
"상감마마, 왕비께서 알을 낳으신 것은 상서롭지 못한 일인 것 같습니다. 그러하오니 그 알을 멀리 보내는 것이 어떻까 합니다."나이가 많고 지혜로운 대신이 말했다. 다른 신하들도 마찬가지였다. 왕은 신하를 시켜 커다란 궤를 만들도록 했다. 그 궤 안에 알, 일곱가지 보물, 그리고 알을 모실 노예들을 넣어서 배에 실어 멀리 띄워보냈다.

왕과 왕비의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슬펐다.
궤를 실은 배는 물결치는 대로 파도에 밀려 멀리멀리 떠나가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홀연히 붉은 용이 한 마리 나타나더니 배를 호위하기 시작했다.
이 배가 처음 와닿은 곳은 가락국의 앞바다였다. 이를 본 사람들은 이상한 배가 들어왔다고 곧 조정에 알렸다.
가락국의 임금은 신하들과 함께 나와서 배를 맞이하려고 북을 치며 환영의 뜻을 표하고 사람을 보냈다.
그러자 그 배는 곧장 뱃머리를 돌려 계림 동쪽 아진포의 앞바다에 이르렀다.
아진포 갯가에는 할머니가 한 분 살고 있었다. 이 할머니의 이름은 아진의선이라고 하는데 바닷가에 살면서 고기를 잡아 나라에 바치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할머니였다. 이 날도 할머니는 바닷가에 나가 조개를 캐고 있었다.

한창 조개를 캐고 있는데 어디선가 까치의 울음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할머니는 무심코 까치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니 까치 소리가 나는 곳은 바다 가운데에서였다."세상에 저처럼 이상한 일이 있을까. 까치들이 어디서 저렇게 많이 날아와서 울어대는 것일까."할머니는 이렇게 중얼거리다가 까치들이 울어대는 바다 가운데 한 척의 배가 떠있는 것을 보았다.
할머니는 곧 노를 저어 바다로 나갔다. 그래도 까치들은 배에서 떠나지 않고 배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그런데 자세히 보니 배 위에는 큰 궤가 있지 않은가.
그 궤는 길이가 스무 자쯤 되고 폭이 열 석자쯤 되어 보였다.

할머니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배를 끌고 바닷가로 갔다. 할머니는 궤가 궁금했다."도대체 무엇이 들었을까"할머니는 이런 생각을 하며 조심스럽게 궤를 열었다.그러자 궤짝 안에서 한 줄기 빛이 눈부시게 퍼져 나왔다.
그리고 그 빛 가운데에는 잘 생긴 사내아이가 단정하게 앉아 있고
일곱 가지 보물과 노예들로 가득 차 있었다.

사내아이는 키가 석 자에다 머리 둘레는 한 자나 되었다. 할머니는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으로 갔다.사내아이는 할머니의 집에서 머물게 되었다.
할머니는 그들을 맛있는 음식으로 정성껏 대접했다. 사내아이는 한 이레가 지나자 입을 열어 말을 했다. 자기는 용성국의 왕자라는 것과 그리고 가락국을 거쳐 신라에 오게되었다는 것을 설명하였다.할머니는 마을의 지혜로운 노인들과 의논을 한 끝에 왕자의 이름을 알에서 벗어났다는 뜻으로 벗어날 탈(脫)자와 궤 속에서 풀려났다는 뜻으로 '풀을 해(解)자'를 붙여서 탈해라 하였다.

탈해는 무럭무럭 자랐다. 하루는 탈해가 지팡이를 들고 두 명의 노예와 함께 토함산으로 올라갔다.토함산 꼭대기에 올라간 탈해는 그곳에 하나의 돌무더기를 만들고 거기서 이렛동안 머물면서 서라벌 도성을 굽어보았다.
이레 뒤에 자기가 살만한 집을 물색하는 것이었다.
탈해는 며칠을 두고 서라벌을 살핀 끝에 건너편 산 아래에 있는 언덕에 눈이 머물렀다. 초승달처럼 굽은 그 언덕은 다시 없는 훌륭한 집터였다.

"옳지, 저기야말로 더없는 집터구나."탈해는 산을 내려와 그 언덕으로 갔다.
그러나 그곳에는 이미 호공이라고 하는 신라의 재상이 살고 있었다. 그는 원래 일본 사람으로 표주박을 허리에 차고 신라에 건너와 귀화한 사람이었는데 박혁거세왕 때부터 신임을 받아 권세를 크게 누리고 있는 사람이었다.
탈해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집을 차지하고 싶었다. 탈해는 곰곰 생각한 끝에 묘한 생각을 했다. 탈해는 사람을 시켜 밤중에 몰래 호공의 집에 숯부스러기와 숫돌을 묻게 하였다.

이튿날 탈해는 호공의 집을 찾아갔다. 그는 호공을 만나자마자,
"대감님, 이 집은 우리 조상 대대로 살아온 집입니다. 죄송하지만 이 집을 저에게 돌려 주시지요."호공은 그럴 리 없다고 부인했다.
"이게 네 집이라고?"
"그렇습니다. 우리 조상 대대로 살아오던 집입니다."
"어림없는 소리 마라."
"틀립없습니다."
이렇게 내 집이라느니 아니라느니 하여 두 사람의 다툼은 끝이 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두 사람은 마침내 관청에 가서 서로 자기 주장을 내세웠다. 판결을 맡은 관헌은 탈해에게 물었다."무엇으로 네 집인 것을 증명하느냐?"
"우리 집은 조상 대대로 대장장이었습니다. 제가 얼마 동안 이웃 고을에 나가 있다가 돌아와보니 저 사람이 우리 집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이 집이 저의 집이라는 것을 알려면 이 집의 땅을 파보십시오. 그러면 틀림없이 저의 조상들이 일하던 흔적이 나올 것입니다."판결을 맡은 관헌은 탈해의 말을 듣고 곧 호공의 집안을 여기저기 파보기 시작하였다.

과연 탈해의 말대로 대장간이었다는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집 땅 속에서 숫돌과 숯부스러기 등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음, 네 말이 맞았다. 호공은 즉시 이 아이에게 집을 돌려 주도록 하시오."
판결을 맡은 관헌은 이렇게 판결을 내렸다. 호공은 어쩔 수 없었다. 달리 변명을 할 수가 없었다. 이리하여 호공은 마침내 자기 집을 탈해에게 내주고 말았다.
이런 소문은 신라의 제2대 임금인 남해왕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남해왕은 탈해가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왕의 맏딸을 탈해에게 시집 보내었다. 이리하여 탈해는 왕의 사위가 되었다.

하루는 탈해가 동악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몹시 갈증을 느꼈다.
탈해는 백의라고 하는 사람을 시켜서 마실 물을 떠오게 하였다.
백의는 뿔로 된 잔을 들고 물을 뜨러 갔다. 백의는 잔에 가득 물을 떠오다가 목이 마른 것을 느끼고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랬더니 뿔로 만든 잔은 백의의 입술에 딱 붙어버리고 떨어지지를 않았다.
백의는 할 수 없이 입술에 잔을 붙인 채로 탈해 앞으로 갔다. 탈해는 이것을 보고 곧 백의를 꾸짖었다.
"이놈, 떠오던 물을 함부로 마시었구나."백의는 얼굴을 들지 못하고 빌었다.
"앞으로는 절대로 그와 같이 무엄한 짓을 하지 않겠사옵니다."
백의가 이렇게 사죄하면서 마음 속으로 굳게 다짐하자 그제야 입술에서 잔이 떨어졌다.

이런 일이 있은 뒤부터 백의는 탈해가 무서워서 감히 거짓말을 못하였다.
지금도 동악에는 한 우물이 있어 요내정(遙乃井)이라 부르는데, 이 우물이 바로 백의가 물을 긷던 우물이라고 한다.이 무렵 남해왕이 승하하였다. 그 뒤를 이어 남해왕의 큰 아들인 유리왕자가 이을 차례였으나 유리 왕자는 탈해에게 왕위의 자리를 양보하였다.

탈해는 탈해대로 왕위는 유리 왕자가 올라야 한다고 거절을 했다. 이리하여 좀처럼 결말이 나지 않았다.그러자 탈해는 이상한 제안을 했다. 그것은 예부터 위대한 사람은 보통 사람보다 이빨의 수효가 많다고 하니 이빨의 수효를 세어서 왕을 결정하자고 했다.

(이사금의 뜻) 그리하여 그들은 떡을 가져다가 입으로 물어 떼어 그곳에 나타난 이빨의 수효를 보고 왕을 결정하게 되었는데, 그 결과 유리 왕자가 어금니 한 개가 더 많아 먼저 임금이 되었다. 그는 시호를 노례왕이라 하였다.
그뒤 노례왕이 승하하자 탈해가 왕위에 올랐다.

그리고는 '옛적 우리 집이었다'는 핑계로 호공의 집을 차지했다고 해서 성을 '옛 석(昔)'이라 했다.
그런가 하면 더러는 까치 때문에 궤를 열게 되었다고 해서 까치 작(鵲)자에서 새 조(鳥)자를 떼어 버리고 남아있는 옛 석(昔)자로 성을 삼았다고도 한다.

탈해는 왕위에 오른지 23년만에 승하하였다.
신라 사람들은 탈해왕을 소천 구릉에 장사지냈다. 그 뒤 그의 혼령이 나타나 자기의 뼈를 매장하지 말라고 하였다.
사람들은 기이한 일이어서 능을 헤쳐 보았더니 그 해골의 둘레가 석 자 두 치이고 몸뼈의 길이가 아홉 자 일곱 치였으며 이빨은 서로 엉키어 한 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그뿐 아니라 뼈마디는 떨어져 있지 않고 살았을 때처럼 붙어 있었다.
이른바 천하에 무적인 역사(力士)의 골격이었다.

그의 뼈대를 부수어 소상을 만들어 궁궐에 안치하였더니 혼령이 또 나타나 자기의 뼈를 동악에 두도록 하라고 지시하였다. 사람들은 그가 신라땅에 처음 나타나 동악에 올라가 쌓았던 돌무덤에 그의 뼈를 안치하고 나라에서는 제사를 끊이지 않고 지내면서 그를 동악신으로 모시었다.

<출 처 > 인터넷 : http://songkw.com.ne.kr/go2/10-6.htm송경원의 국어공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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