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柱命理哲學    [재미있는사주이야기] - 명리학의 역사 2008/01/31

명리학의 태동(胎動)은 문헌에 따르면 전국시대(戰國時代)의 귀곡자(鬼谷子)와 낙록자(珞琭子)를 시원(始原)으로 한다.

★  귀곡자(鬼谷子)

성명과 행적이 모두 알려지지 않았다. 영천(潁川), 양성(陽城)의 귀곡지방에서 은둔하였기 때문에 鬼谷子라고 하였다. 진(秦) ․ 초(楚) ․ 연(燕) ․ 조(趙) 등 7국이 천하의 패권을 다투던 시대에 권모술수의 외교책을 우자(優者)의 道라고 주장한 종횡가(縱橫家)이며, 소진(蘇秦)과 장의(張儀)도 그의 제자였다고 한다.

천지간의 현상은 천지를 생성하는 도에 의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는 일정한 법칙에 지배된다고 보았으며,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동정변화(動靜變化)를 알아야 한다고 설명하였다.

저서로는 유분이라 전해지는 「鬼谷子」1권이 전해지며, 소진의 가탁(假託)으로 간주되었다. 현행본은 내용도 천박하고 문자자체도 전국시대의 것이 아니어서 위서임이 명백하다.

-鬼谷子가 撰(지을찬, 가릴선)한 원문을 당대 이허중(李虛中)이 주해한 「李虛中命書」가 나오게 되는데, 이 「李虛中命書」로 인하여 전국시대에 이미 상당한 수준의 명리이론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 낙록자(珞琭子)

누구인지에 관해서 5가지 설(說), 양(梁)의 소명태자(昭明太子)라는 설, 주(周)의 세자 진(晉)이라는 설, 남북조대의 도홍경(陶弘景)이라는 설, 서자평(徐子平)이라는 설, 석담영(釋曇瑩)이라는 설이 있다. 귀곡자에 비해 낙록자의 정체는 아직까지 논란 중인데 정설로 굳어진 것은 없다.

-「소식부(消息賦)」를 저술하였으며, 현재 「사고전서(四庫全書)」에 송대(宋代)에 이르러 4명의 주해를 곁들인 「낙록자부사가주(珞琭子賦四家注」가 전한다.


★ 추연(騶衍 ?~?)

제나라 사람이라 알려져 있으며 맹자보다 약간 늦게 등장하여 음양오행설을 제창하였다. 세상의 모든 사상은 토․목․금․화․수의 오행상승(오행상승)원리에 의하여 일어나는 것이라 하였고, 이에 의하여 역사의 추리나 미래에 대한 예견을 하였다. 이것은 오행상생설과 더불어 중국의 전통적 사상의 기초가 되었다.

「추자(鄒子)」49편, 「추자시종(鄒子始終」56편 등의 저서가 있었으나 전하지 않는다.

五德은 우주에 존재하는 다섯 가지 상이한 성질의 힘으로서, 일정한 순서에 따라 끊임없이 유행한다. 어떤 한 德의 도래와 소멸은 왕조의 흥망을 결정할 수 있다. 왕조의 변천이 五德의 상호전화(相互轉化)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 동중서(董仲舒 BC179~BC104)

하북성(河北省) 광천현(廣川縣)출신. 일찍부터 「공양전(公羊傳)」을 익혔으며 경제(景帝)때는 박사가 되었다. 장막(帳幕)을 치고 제자를 가르쳤기 때문에 그의 얼굴을 모르는 제자도 있었다. 3년 동안 정원에 나가지 않을 정도로 학문에 정진 하였다. 무제(武帝)가 즉위하여 크게 인재를 구하므로 현량대책(賢良對策)을 올려 인정을 받고, 전한의 새로운 문교정책에 참획(參劃)하게 되었다. 오경박사(五經博士)를 두게 되고, 국가 문교의 중심이 유가(儒家)에 통일된 것은 그의 헌책(헌책)에 힘입은 바가 크다. 그러나 뒤에 자신의 학설로 말미암아 투옥되는 등 파란 많은 생애였다.

저서에 「동자문집(董子文集)」「춘추번로(春秋繁露)」등이 있다.


★  동방삭(동방삭 BC154~BC93)

字 만천(曼商), 염차(厭次 : 지금의 산동성 평현(山東省 平縣) 부근)사람
막힘이 없는 유창한 변설과 재치로 한무제(漢武帝)의 사랑을 받아 측근이 되었다.  그러나 단순한 시중꾼이 아니었으며, 무제의 사치를 간언하는 등 근엄한 일면도 있었다. ‘익살의 재사’로 많은 일화가 전해진다. 부국강병책(富國强兵策)을 상주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를 자조(自嘲)한 문장 「객난(客難)」과 「비유선생지론(非有先生之論)」을 비롯하여 약간의 시문을 남겼다. 속설에 西王母의 복숭아를 훔쳐 먹어 장수하였다 하여 ‘삼천갑자 동방삭’으로 일컬어졌으며 ‘오래 사는 사람’이라는 표현으로 그 뜻이 바뀌어 쓰인다.

★ 관로(管輅 208~256)

삼국시대 위(魏)나라의 平原 사람으로 자는 公明. 「풍각점(風角占)」과 관상에 정통하였다. 저서로는 「주역통영결(周易通靈訣)」과 「주역통영요결(周易通靈要訣)」이 있다.

★  곽박(郭璞 276~324)

자는 경순(景純). 하동 문희(河東 聞喜) 사람으로 동진(東晋)의 문학가 사상가이다. 박학다식에 재능이 많다. 古文이나 시부(詩賦)를 좋아하였다.
陰陽 / 역산(曆算) / 五行 / 점서(점서) 등의 술수에 정통하였다. 나중에 逆王을 도와 점을 행했다가 피살되었다. 일찍이 「이아(爾雅)」「산해경(山海經)」「방언(方言)」「초사(楚辭)」등을 주해하였다.
원천강(袁天綱 唐代宗代人, 7C初), 이형풍(李涥風), 일행선사(一行禪師)는 前唐代(618~712)에 역법과 천문, 술수 등에 상당한 조예를 가졌던 것(이 시기의 추명학은 성학과 융합하는 형태였을 것으로 추정)으로 알려짐 「오성삼명지남(五星三命指南)」은 星學에 의한 추명술을 소개하였다. 최초로 ‘四柱’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 이순풍(李淳風 602~670)

기주(岐州) 옹인(雍人). 父는 파(播)로 수대(隋代)에 고당위(高唐尉)를 지냈다. 自號는 황관자(黃冠子)이다. 어려서 총명이 뛰어나 군서를 널리 섭렵한 중에 天文 ․ 律曆 ․ 五行志를 모두 저작(著作)하였으며 유작(劉焯)의 「황극력(皇極曆)」을 증손(增損)하였고 「인덕력(麟德曆)」을 개찬(改撰)하였다.

이외에도 「전장문물지(典章文物志)」,「을사점(乙巳占)」,「비각록(秘閣錄)」,「제민요술(齊民要術)」을 지었고, 문집(文集) 10권이 있다.
관직은 승무랑(承務郞), 태상박사 태사승 태사령(太常博士 太史丞 太史令)을 지냈다.

★ 일행(본명 : 장수(張遂), 一行和尙, 一行禪師, 683~727)

지금의 허난성(河南省)인 위주(魏州)의 창락(昌樂)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경사(經史)와 역상(歷象);음양오행(陰陽五行)의 학문에 정통하였다.
출가하여 쑹산(嵩山)의 보적선사에게 선요(禪要)를 배웠고, 지금의 후베이성(湖北省)인 형주(荊州)창양산(常陽山)의 오진(悟眞)에게서 율장(律藏)을 배웠다.
그 뒤 천태산(天台山)에 올라가 천태종(天台宗)의 진리를 터득하였다.
716년과 720년에 선무외(善無畏)와 금강지(金剛智)가 인도에서 당나라로 와서 불교경전 번역사업을 시작하였다. 그는 선무외로 부터 불교를 전수받고 그를 도와 「대일경(大日經)」을 번역하였다. 또 선무외의 지도를 받으면서 「대일경소(大日經疏)」(20권)을 완성시켰다. 717년 현종(玄宗)의 부름을 받고 장안(長安)에 갔는데, 현종은 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고 불교에 귀의하였다. 721년 이순풍(李淳風)이 만든 인덕력(麟德曆)에 의한 일식의 예보가 자주 틀리게 나오자 현종은 일행에게 신력(新曆)을 편찬하도록 명하였다. 일행은 먼저 양영찬(梁令瓚)과 협력하여 황도유의(黃道遊儀)를 만들어 태양․달․5행성의 운행 및 항성의 위치를 측정하였다. 또 수력으로 움직이는 천구의(天球儀)를 제작하였다. 723년부터는 남궁설(南宮說)과 더불어 대규모의 자오선 측정을 실시하여 1도가 당나라의 척도로 351리 8보(123.7㎢)에 해당한다는 결과를 얻었다. 724년에 역법(曆法) 개편작업을 시작하여 역법에 역(易)의 형이상학을 결부시킨 「대연력(大衍曆)」(52권)을 완성시켰다. 이 역법(曆法)에 의하여 계산된 태음력은 그의 사후인 729년부터 전국에 배포되었다. 일행도 일대의 영재로서 존경을 받았으나 45세의 젊은 나이에 죽었다.
현종이 직접 탑록(塔錄)을 썼다고 한다. 일행은 불교사상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이지만, 현대 중국에서는 오히려 천문역법의 과학자로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시호는 대혜선사(大慧禪師)이다. 「일행선사구변비결(一行禪師九變秘訣)」이란 책이 있다.

★ 이허중(李虛中, 761~813)

字는 상용(常容), 위군인(魏郡人 : 현하북대명(現河北大名))으로 북조(北朝)때 위(魏)의 시중(侍中), 충(沖)의 8대손이다. 당 헌종(唐 憲宗 : 805~820)때 전중시어사(殿中侍御使)가 되었다.

한유(韓愈)가 지은 「이허중묘지명(李虛中墓誌銘)」에 이르기를 李虛中은 일찍이 학문에 심취하여 두루박식하였고, 오행서(五行書)에 정통하여 사람의 年/月/日/時의 干支를 통하여 生/剋과 旺/相과 衰/死를 짐작하여

사람의 壽/요(夭)와 貴/賤과 利/不利를 추산하였다고 한다. 성관(星官)이나 역법(曆法)의 원로들도 그와 더불어 득실을 비교할 수 없었다. 한점으로 미루어 성학(星學)이나 천문역법에 관하여 상당히 해박하였다.

「이허중명서(李虛中命書)․총목제요(總目提要)」,(「사고전서(四庫全書)․울부술수류(亐部術數類)」):당한유찬(唐韓愈撰),「이오백가주한창여문집(二五百家注韓창黎文集)」참조.

시진추명법(時辰推命法)은 출생시점(出生時點)의 간지력(干支曆)을 기반으로 推命하는 방법이다. 이를 엄밀히 나누어 보면 고법명리학의 세부구성을 이루는 것은 시진추명법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외 성학(星學)체계에 의한 성상추명법(星象推命法)과 四柱干支를 卦로 환산한 괘상추명법(卦象推命法);出生時點의 干支체계를 相法과 연결지어 추명하는 귀천정격오행상법(貴賤定格五行相法)등도 있다.

그러나 時辰推命法 이외의 추명법도 본 논고에 응용하지 않는다.

송대 2인의 문장을 통하여 당송대 무렵에는 日辰은 결국 生日과 生時를 함께 의미했었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

日辰에 대하여 민국초 애수산(哀樹珊)의 「명리탐원(命理探原)」에 언급된 내용을 살피면 “일진이란 하늘에 12辰이 있으므로 하루는 12時로 나뉜다. 태양이 모진(某辰)에 이르면 모시(某時)가 된다.

그러므로 時도 또한 日辰이라 한다.”라고 소개하였는데, 日辰이 시간의 의미를 가지고 있음에 무게를 두고 있다.

李虛中의 명리론은 이후 후대 명리학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지만 명대 이후 자평명리학의 유행과 더불어 납음론(納音論), 연본일주론(年本日主論), 신?론(神?論), 녹마론(祿馬論) 등은  급격히 변용/왜곡되거나 쇠퇴하고 심지어 실전(失傳)하였다.

<발췌 http://cafe.naver.com/ekxjfk.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377 >


■ 사주학 발달의 간단한 개괄

- 중국의 시대별 순서

하- 은- 주- 춘추시대(진,제,초,월,오)- 전국시대(초,제,진,연,한,위,조)- 진- 한- 신- 후한- 삼국시대(위,촉,오)- 진- 남북조- 수- 당- 5대10국- 송- 남송- 원(몽고)- 명- 청


고대 중국에는 주역에 의한 음양의 학설이 먼저 존재했고, 춘추전국 시대에 비로소 메소포타미아 문화 의 영향을 받아 태양계의 오행성으로 운명을 판단하는 오행 학설이 유포되기 시작했다.

중국에서 연월 일시의 간지를 가지고 시간을 기록한 것은 동한 순제東漢順帝(서기 126년) 이후의 일이었다. 그 이전에는 세성歲星(목성)으로 년지年支를 기록하지 않았던 것이다.

당나라 말 송나라 초에 이허중이 년주의 납음으로 운명을 판단하는 이론을 세웠는데, 그의 저서로는 <이허중명서李虛中命書>가 있다.

년주 위주의 사주학을 일간 위주의 사주학으로 개발한 사람이 서자평徐子 平이었고, 그의 후예 서승徐升이 <연해淵海>라는 사주학 책을 저술했다.

그 후에 당금지라는 사람이 <연 해>와 비결집 <연원淵原>을 합본하여 <연해자평淵海子平>이라는 책을 발행했는데, 이것이 지금까지 전해 오는 <연해자평>이다.

서자평은 송나라 고종 때의 사람으로 1135년경에 <낙록자삼명소식부주珞碌子三命 消息賦註>를 썼고, 그와 비슷한 시기에 일간 위주의 사주학을 창안했다. <연해자평> 안에 수록된 '계선편 繼善篇'은 그의 저술이다.

명나라 때는 장신봉이 <명리정종命理正宗>을 저술했고, 만육오가 <삼명통회三命通會>를 저술했다.

청나 라 초기에 여춘대가 <궁통보감窮通寶鑑>을 저술했다.

명사明史 예문지에 <삼명담적천수三命談滴天髓>라는 것이 실려 있는데, 그것이 명나라의 개국 공신 유백온이 지은 <적천수滴天髓>의 원본이다.

청나라 초엽에 진소암이 <적천수> 원본을 주해한 <적천수집요滴天髓輯要>를 저술했다.

진소암은 강희 5년(1666년)에 사 망했으니, 그의 저술 연대는 그보다 앞설 것이다.

청나라 중엽에 심효첨이 <자평진전子平眞詮>을 저술했 는데, 건륭 41년 병신년 1747년에 호공보가 이를 발행했다.

심효첨은 건륭 4년 서기 1665년 기미년에 진사에 급제한 사람이다.

임철초는 건륭 38년 서기 1773년 음력 4월 18일 진시에 출생하여 73세 되는 1846년에 <적천수천미滴天髓闡微>를 저술했다.

민국 초년 1933년에 원수산이 <적천수천미>를 발행했는 데, 진소암의 주석도 함께 넣었다.

1935년에는 서락오가 <적천수징의滴天髓徵義>를 발행했는데 <적천수천 미>에서 진소암의 주석 부분을 삭제한 것이다.

그 후에 서락오는 다시 <적천수보주>와 <자평수언子平粹 言>을 저술했고, 원수산이 <명리탐원命理探原>과 <명보命譜>를 저술했다. 이상이 대표적인 사주학 고전의 발행 순서이다.

현대에 와서 위천리의 <명학강의命學講義>와 <팔자제요八字提要>는 의미가 깊은 책이다.

위천리의 <명 학강의>를 한국의 박재완 선생이 번역하여 <명리요강命理要綱>의 이론 체계를 세웠고, 위천리의 <팔자제 요>를 번역하고 거기에 일지론을 첨가하여 <명리사전>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사주학 대가로는 이석영 선생과 박재완 선생이 있는데, 이석영 선생은 <사주첩경四柱捷徑>을 저술한 것으로 유명하다.

<출처 : http://blog.daum.net/01077241212/13638986 >





     
   [펌-흥미있는이론]- 출생순간에대한 이론 四柱命理哲學  
   [재미있는점복이야기] - 조선의 점복술 四柱命理哲學